도멘 프리에르 로크 (Domaine Prieuré Roch) – 부르고뉴 자연주의 와인의 정점

설립과 철학의 근원:

도멘 프리에르 로크는 1988년, 부르고뉴의 가장 존경받는 가문 중 하나인 르루아(Leroy) 가문의 일원이자 도멘 드 라 로마네 꽁티(Domaine de la Romanée-Conti, DRC)의 공동 디렉터였던 고(故) 앙리-프레데릭 로크(Henry-Frédéric Roch, 1962-2018)와 현재 도멘을 이끌고 있는 야닉 샹프(Yannick Champ)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앙리-프레데릭 로크는 그의 이모이자 부르고뉴의 또 다른 전설인 랄루 비즈-르루아(Lalou Bize-Leroy) 여사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산업화 이전 시대의 순수하고 전통적인 와인 양조 방식을 추구하는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철학은 "인위적인 기술이 아닌, 떼루아 자체가 말하는 와인"을 만드는 것이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도멘 프리에르 로크의 핵심 가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위치 및 포도밭:

도멘은 부르고뉴 꼬뜨 드 뉘(Côte de Nuits)의 프레모-프리세(Prémeaux-Prissey) 마을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뉘 생 조르주(Nuits-Saint-Georges), 본 로마네(Vosne-Romanée), 쥬브레 샹베르땡(Gevrey-Chambertin) 등 꼬뜨 드 뉘의 핵심적인 마을에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포도밭은 비교적 작은 규모이지만, 각 구획은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곳들로 엄선되었습니다.

주요 포도밭 및 뀌베는 다음과 같습니다:

• 그랑 크뤼 (Grand Cru): 샹베르땡-끌로 드 베제(Chambertin-Clos de Bèze), 끌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 프리미에 크뤼 (Premier Cru): 본 로마네 레 쉬쇼(Vosne-Romanée Les Suchots), 뉘 생 조르주 끌로 데 코르베(Nuits-Saint-Georges 1er Cru Clos des Corvées - 모노폴/단독소유밭) 등
• 빌라쥬 및 지역단위 (Village & Régionale): 뉘 생 조르주 빌라쥬, 본 로마네 빌라쥬, 쥬브레 샹베르땡 빌라쥬, 라두아(Ladoix), 그리고 꼬또 부르기뇽(Coteaux Bourguignons) 등

포도 재배 – 비오디나미 그 이상:

도멘 프리에르 로크는 설립 초기부터 비오디나미(Biodynamie) 농법을 철저히 실천해 온 부르고뉴 자연주의 와인의 선구자입니다. 단순히 인증을 넘어, 포도밭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존중하며 토양의 건강과 생물 다양성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일부 구획에서는 말이 끄는 쟁기를 사용하여 땅을 갈고, 화학 비료나 제초제, 살충제의 사용은 일절 배제합니다. 이러한 세심한 관리를 통해 포도나무 스스로가 건강하게 자라 떼루아의 특징을 온전히 담아낸 포도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자연스럽게 수확량은 극도로 낮게 유지됩니다.

양조 – 극도의 무개입주의 철학:

프리에르 로크의 셀러는 "아무것도 더하지 않고, 아무것도 빼앗지 않는다(Ni chaptalisation, ni levurage, ni enzymage, ni filtration, ni collage, et des doses minimales de soufre)"는 앙리-프레데릭 로크의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곳입니다.

• 전송이 발효 (Whole Cluster Fermentation): 레드 와인의 경우, 포도송이 전체(줄기 포함)를 발효하는 방식은 프리에르 로크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는 와인에 독특한 스파이스, 꽃 향기, 복합미, 그리고 타닌 구조감을 더해주며 신선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빈티지와 뀌베에 따라 전송이 비율은 조절되지만, 종종 100% 전송이를 사용합니다.
• 토착 효모 (Indigenous Yeasts): 인공적으로 배양된 효모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포도 껍질과 셀러 환경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토착 효모만을 이용하여 발효를 진행합니다. 이는 와인에 더욱 복합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그러나 떼루아에 더욱 가까운 풍미를 부여합니다.
• 추출 (Extraction): 발효 과정에서의 추출은 매우 부드럽게 이루어집니다. 강한 펌핑 오버(Remontage)나 펀칭 다운(Pigeage)보다는 자연스러운 침용(Infusion)을 통해 섬세한 풍미와 타닌을 추출하고자 합니다.
• 오크 숙성 (Oak Usage): 새 오크통의 사용을 극도로 자제하고, 주로 여러 번 사용된 중고 오크 배럴에서 와인을 숙성시킵니다. 이는 오크 풍미가 와인의 과실미나 떼루아 특징을 가리는 것을 방지하고, 와인이 천천히 숨 쉬며 발전하도록 돕습니다. (과거 DRC에서 사용했던 오크통을 일부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현재는 다양한 출처의 고품질 중고 오크통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아황산염 최소화 (Low/No SO2): 양조 과정 전반에 걸쳐 아황산염(SO2)의 사용을 극도로 제한하며, 많은 뀌베에서 병입 시에도 아황산염을 전혀 첨가하지 않거나(Sans Soufre Ajouté),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극소량만을 사용합니다. 이는 와인에 더욱 생생한 활력과 순수함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와인이 외부 환경 변화에 다소 민감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 무청징, 무여과 (No Fining, No Filtering): 와인의 맛과 향, 질감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정제나 필터링 과정을 거치지 않고 병입합니다. 이로 인해 와인에 약간의 침전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장기 숙성 (Long Élevage): 와인은 종종 효모 앙금(Lees)과 함께 배럴에서 장기간 숙성되어 복합미와 질감을 더합니다.

와인 스타일 및 특징:

도멘 프리에르 로크의 와인은 일반적인 부르고뉴 와인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독특한 개성을 지닙니다.

• 순수함과 생동감 (Purity & Vibrancy):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한 결과, 포도와 떼루아 본연의 순수함과 생생한 에너지가 와인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 떼루아의 강렬한 표현 (Terroir Expression): 각 포도밭의 미묘한 차이가 와인에 투명하게 반영되며, 특히 미네랄리티가 돋보입니다.
• 독특한 아로마 프로필 (Aromatic Profile):
  • 레드 와인: 밝고 신선한 붉은 과실(체리, 라즈베리 등) 향과 함께 강렬한 꽃 향기(장미, 작약, 제비꽃), 그리고 전송이 발효에서 오는 독특한 스파이스(후추, 줄기 뉘앙스, 찻잎)와 허브 향이 특징적입니다. 숙성되면서 숲 바닥(Sous-bois), 흙내음, 가죽, 때로는 약간의 야성적인(Sauvage) 풍미가 더해져 매우 복합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 화이트 와인 (생산량 적음): 역시 순수함과 미네랄리티가 강조되며, 시트러스, 흰 꽃, 그리고 배럴/효모 숙성에서 오는 미묘한 질감과 복합미를 지닙니다.
• 팔레트 (Palate): 레드 와인의 경우, 생동감 넘치는 산도와 섬세하지만 존재감 있는 타닌, 그리고 실크처럼 부드러운 질감(특히 숙성 후)이 특징입니다. 힘보다는 풍미의 강도, 에너지, 그리고 긴 여운으로 승부합니다.
• 숙성 잠재력 (Aging Potential): 아황산염 사용을 극도로 제한함에도 불구하고, 잘 만들어진 프리에르 로크의 와인(특히 레드 와인과 좋은 빈티지)은 놀라운 숙성 잠재력을 보여주며 수십 년간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다만, 와인의 특성상 완벽한 보관 조건이 매우 중요합니다.
• "도전적인 스타일": 때로는 휘발성 산(VA)이나 자연주의 와인 특유의 '펑키함(Funk)'이 느껴질 수 있어, 전통적이고 깔끔한 스타일의 부르고뉴 와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도전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이 오히려 와인의 매력과 개성으로 받아들여지며 자연주의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깊은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명성과 소장 가치:

도멘 프리에르 로크는 의심할 여지 없이 부르고뉴를 넘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자연주의 와인 생산자 중 하나입니다. 그들의 와인은 극도의 희소성으로 인해 출시와 동시에 전 세계 와인 애호가와 컬렉터들에게 할당되며, 시장에서는 매우 높은 가격에 거래됩니다. 앙리-프레데릭 로크의 선구적인 철학과 타협 없는 품질 추구는 오늘날까지 도멘 프리에르 로크 와인의 모든 병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처럼 도멘 프리에르 로크는 단순한 와이너리를 넘어, 부르고뉴 자연주의 와인의 철학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그들의 와인을 경험하는 것은 떼루아와 포도, 그리고 와인메이커의 순수한 교감을 느끼는 특별한 여정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