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인구트 프리드리히 베커(Weingut Friedrich Becker)는 독일 팔츠(Pfalz)의 최남단, 프랑스 국경에 맞닿은 마을 슈바이겐(Schweigen)에 있습니다. 국경이 지도 위의 선일 뿐이라는 걸 가장 잘 보여주는 와이너리로, 도멘이 경작하는 밭의 상당 부분이 실제로는 국경 너머 알자스 쪽에 있습니다. 포도는 프랑스 땅에서 자라지만 와인은 독일 와인으로 병입됩니다.
라벨의 여우 그림은 이 사정을 그대로 담은 것입니다. 국경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드는 여우처럼, 베커의 밭도 두 나라에 걸쳐 있습니다. 토양은 알자스 북부와 이어지는 석회암과 이회토(Kalkmergel) 계열로, 독일 대부분의 산지와 달리 부르고뉴에 가까운 조건입니다.
베커는 독일 피노 누아(슈페트부르군더)의 정점으로 꼽히는 생산자이며, 같은 석회질 밭에서 나오는 바이스부르군더·그라우어 부르군더·샤르도네 화이트 역시 독일 부르고뉴 품종 와인의 기준점으로 평가받습니다. VDP 회원이며, 현재는 아들 프리드리히 베커 주니어가 양조를 맡고 있습니다.
"국경 석회암에서 나온 샤르도네 — 생산자가 15년을 본 와인."
이름에 슈바이겐(Schweigen)이 붙은 오르츠바인(Ortswein, 마을 등급)입니다. 독일 VDP 체계에서 기본 구츠바인 위에 놓이며, 마을의 성격을 대표하는 자리입니다.
샤르도네는 원래 부르고뉴의 품종이고, 베커의 밭은 알자스 북부와 이어지는 석회암·이회토 위에 있습니다. 독일에서 샤르도네가 잘 되는 곳이 많지 않은데, 이 국경 지대는 토양 조건이 부르고뉴에 가장 가까운 축에 듭니다. 그래서 베커의 샤르도네는 독일 와인이라기보다 부르고뉴 화이트의 문법으로 읽힙니다.
주목할 점은 생산자가 표기한 숙성 잠재력이 2037년이라는 것입니다. 마을 등급 화이트에 15년을 매기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만큼 산도와 구조가 단단하다는 뜻입니다.